제2의 시사저널 사태가 될 뻔한 FILM 2.0 사태

광고주의 압박에도 꿋꿋하게 버틴 FILM 2.0 경영진과 편집진



▲ 문제가 되었던 FILM2.0 기사와 그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편집자의 말 부분


입장이 없다는 입장에 관하여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영화계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 회사 이름을 들어도 좀 헷갈리는데다 그게 "제작, 배급, 투자.." 이런 단어가 나오면 그나마 아는 것도 잃어버린다. 그러면서도 매주 나오는 필름 2.0 이란 잡지는 꼭 한 권씩 사서 읽는다. 이게 1000원이라서 신문 사는 것보다 이익이기 때문이라면, 필름 2.0 관계자 분들이 슬퍼하실까? 물론, 영화기사가 참 재미있어서다.

월요일이면 지하철 가판대에서 꼭 이 잡지를 산다. (실제로 이 책은 토요일날 나오며, 발행일은 그 다다음주 화요일이다. 참 희한하지만, 이게 관례인가? ^^) 어쨌든, 343호, 날짜로는 2007년 7월 17일자, 실제로는 7월 9일에 구입한 이 책의 뒷부분 편집장의 말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위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온통 익명으로 되어 있다. A사가 어떻고, B사가 어떻고.. 어쨌든, 요점은 이렇다. 어떤 A사가 기사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온라인에 올라간 기사라도 내려달라는 것인데,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A사의 입장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입장이 없는게 공식입장"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편집장은 수정이나 정정보도권을 달라고 하는 것이 상식이지 무조건 기사를 내리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반박 보도를 위한 공식 입장을 말해달라고 하자, "공식 입장은 이미 얘기했고, 요구가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뭐, 재미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읽게된 이번 주 필름 2.0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었다.


그들의 조치


 
그들의 조치
http://www.film2.co.kr/column/editorsview/editorsview_final.asp?mkey=223
(위 잡지 사진은 필름 2.0 홈페이지 http://www.film2.co.kr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여기서는 A사가 쇼박스라는 우리나라 3대 배급사 중의 하나임을 밝히고, 문제가 된 기사는 342호에 실린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대한 기사란 것도 명백하게 밝혔다.

이 기사는 칸 영화제에서 영화 제작전에 한국 영화사상 최고가로 팔렸고,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이 세명이 동시 출연하는 이 영화 (이하 '놈놈놈')의 투자.배급권을 쇼박스가 경쟁사인 CJ엔터테인먼트로 넘긴다는 기사였다.

 

 

물론, 이에 대해서 쇼박스측은 공식 발표를 꺼려했고, 실제로 이 영화의 투자사인 바른손영화사업본부의 대표의 말을 인용해서 기사를 쓰게 된 것이다. 이 시점은 책이 나온것이 6월 30일경이고 실제 사람들이 많이 읽게 된 것은 7월 2일경이다. (342호의 명목상 발행일은 7월 10일이다)

뭐, 굳이 따지자면,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들이 이미 지면을 장식한 시점이기도 하다.

 

 

6월 26일부터 줄기차게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았던 쇼박스로서는 이런 보도들에 대해서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아직 별다른 문제없이 이 기사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한 것을 보면, 모두 사실인 듯 보인다. 그러면, 필름 2.0의 어떤 부분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그 부분은 아마도 회사의 현재 사정등에 대해 언급한 부분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또한 정확히 기사에 나와 있지 않으므로 나의 억측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엔 무리가 있다. 어쨌든, 이 기사에는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부분이 있고, 그에 대해서는 입장이 없음이 공식 입장이다.


문제는, 쇼박스가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 있다.

쇼박스가 배급 예정인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정말 궁금해서 미칠 정도의 화제작이다. 그런데, 쇼박스에서는 [디워]의 기자 동반취재에서 필름 2.0을 빠뜨렸고, 디워의 지면 광고도 취소했다. 결국, 디워의 광고는 필름 2.0에 실리지 않았고, 디워의 미국 시사회 기사는 필름 2.0에서 직접취재로는 다루지 못한다고 한다. (시사회는 미국 LA현지시간으로 7월 17일에 열렸으니 이번 주 토요일에 나올 필름 2.0에서 어떤 방법으로 취재를 했는지 궁금하다)


시사저널 사태와 닮았으면서 다른 꼴


일이 되어가는 폼이, 최근 문제되었던 시사저널사태와 비슷하다.

 (관련 글은 http://blog.daum.net/wwwhangulo/6992857 를 참조하시라)

시사저널도 "삼성의 심기를 건드린 기사 하나"가 시작이었고, 이에 대해서 기사를 삭제하라는 압력을 경영진에 넣었고, 그에 따라서 "기사를 빼기를 종용한" 사장과 절대 못뺀다는 편집장의 극한 대립이 시작, 결국 사장이 인쇄를 중단시키고 기사를 직접 빼는 사태가 벌어진게 파국의 시작이었다.

그 사장님이 걱정하신 것은 '삼성의 도움'이 끝날까봐다. 결국 광고를 비롯한 여러가지 금전적인 도움이 아니었겠는가? 시사저널 사장님은 그들의 도움이 절실해서인지, 인쇄를 멈추면서까지 삼성 편을 든다.

쇼박스는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큰 회사로 알고 있다. 영화 제작, 수입, 배급까지.. 메가박스도 그 소유였다. 오리온의 계열사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7월 18일자로 메가박스의 지분을 호주의 회사에 매각했고, 경영을 대신하는 조건으로 100억여원을 받는다는 공식 발표가 났다.) 이런 회사에서 광고를 무기로 영화잡지에 기사 삭제를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필름 2.0의 사장님은 그런 전화를 못받으셨나보다. 그래서 편집장은 그에 힘입어서인지, 이번호에 더 강력하게 그들을 꾸짖으면서 "그깟 광고를 무기로 언론의 기능을 무마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돈 몇푼 때문에 양심을 버릴 순 없다!"는 외침처럼 들리는 것은 내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 ^^


이거 정말 대단한 사건이 아닌가?

솔직히, 잡지사는 광고가 조금이라도 줄면 힘들어 죽는다. 잠시 잡지사에 근무한 내 경력으로는, 광고를 하나 따내기 위한 영업부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엄청 큰 광고주에게 이렇게 대들다가 광고 끊기면... 아... 안봐도 뻔한 광경이다! 이거 FILM 2.0 곧 망하는거 아닌가?


그래서 박수를 보낸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그 기사가 사실을 다루었느냐 아닌가에 대한 문제를 넘어선 것 같다. 즉, 기사의 진위 문제가 아니고, 진위가 의심스러운 혹은 서로 충돌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시각의 차이다.

기사가 잘못되었으면, 그에대한 반박 자료를 내고 정정 기사를 내줄것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반박 자료는 커녕 "입장없음이 공식입장"이라면서 기사의 삭제를 요구한 것은 문제가 많다. 또한, 그런 요구를 하면서 "광고"를 빼는 식의 무언의 협박을 하는 것은 좀 그렇다.

어쨌든, 필름 2.0은 아래와 같은 말을 던지면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나는 이 문장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리고 필름 2.0의 편집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여러 기자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FILM 2.0 (제344호) 2007.7.24 / 7.16일자로 밝힌 장병원 편집장의 글 중에서 발췌

저변의 무의식을 유추해보자면 이렇다. “언론의 기능과 역할은 십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과 다르고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기사여서는 안 된다." 나의 상식으로 이건 언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광고로 어르고 위협해 길들이겠다는 발상은 더더욱 가소로운 일이다. FILM2.0은 물론이고 저마다 자신들의 시각과 철학을 가지고 영화 저널리즘의 본령을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많은 동업자(영화인이 아니라 언론인으로서의 동업자)들에게도 이런 식의 후안무치는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광고로 언론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쇼박스의 졸렬한 인식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려나 저널은 자신의 논리에 따라 무언가 문제를 제기하고 그걸 쓴다. 사실 보도에 엄밀하지 못했다거나 기사의 의도가 곡해될 여지가 있다면, 항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저널의 도리다. 하지만 한 가지 방향으로 맞춰진 기사만을 기대하는 그들의 알량한 요구는 '저널이 저널로 존재하기를 그만두라'는 메시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요즘 시대에 영화 저널을 하려면 기사에 대가가 따르는 경우가 많다. 쇼박스의 조치에서 볼 수 있듯, 그리고 그 대가라는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하지만 대가는 늘 쌍방향적이고 대가가 따른다 한들 저널의 고유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저널의 가치가 신성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널리즘이 발 딛고 선 바탕이 거기라는 것을 말할 뿐이다.
http://www.film2.co.kr/column/editorsview/editorsview_final.asp?mkey=223

* 필름 2.0의 모든 기사는 http://www.film2.co.kr 에서 볼 수 있으며, 스캔된 잡지보기도 http://www.film2.co.kr/magazine/magazine_free.asp 에서 제공하고 있다.

* 이 글은 필름 2.0의 기사와 신문기사를 토대로 작성되었으므로 쇼박스의 입장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필름 2.0같은 언론에도 "입장없음"을 외치는 그들이 나같은 블로거에게는 내 세울 "입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쇼박스 측에서 이 글에 대한 반론권을 요청한다면 기꺼이 후속 기사를 통해서  밝혀드리겠다. (쇼박스의 공식 이메일을 통해서 이 글의 링크를 보내준 바 있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외침

한글로. 2007.7.18.

www.hangulo.kr
http://blog.daum.net/wwwhangulo


* 이 글은 복사하시는 것을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적인 분쟁(?)이 있을 경우에 쓸데없이 관계자로 출두하시는 일이 일어날까봐 그렇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가실 분들은... 출처를 반드시 표기하셔서 선의의 피해자가 되시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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