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즐거운 인생. 그리고 나의 즐거웠던 인생
[즐거운 인생]은 나의 자화상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은 채

나는 '왕의 남자'를 아직까지 못봤다. 아니, 안봤다는 말이 맞다. 왜 안봤느냐? 그것은 글의 중간 쯤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당연히 '라디오스타'도 못봤다. 즉,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한 편도 못본 셈이다. 그런 상태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조조할인'으로 [즐거운 인생]을 보게 되었다.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은 채...

하지만, 편견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난 영화의 줄거리를 이미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봤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내용을 말하라면 아주 쉽게 말할 수 있다. 아니, 이 영화의 포스터만 봐도 어떤 이야기인지는 감이 잡힌다.


즐거운 인생 포스터

▲ 즐거운 인생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포스터 (http://www.cjent.co.kr/happylife/)


그렇다. 이 포스터에 모든 이야기가 있다. 스포일러(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해서 영화보기의 재미를 망치는 글)라구? 아니... 이 영화는 그런 스포일러 자체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뭐, 이야기 다 알고 봐도 상관없다.


네 남자의 즐거운 인생

사실, 영화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다. 세상에 찌든 중년. 직장에서 쫓겨나고,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에 유학보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의미없는 인생. 그 세사람이 대학교때 결성했던 밴드를 다시 만들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아주 밋밋하고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이 영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아니.. 어떤 이들의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만드는 것은... 주인공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너무나도 내가.. (혹은 주인공이..) 형편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들 '저건 내 이야기야'라고 할 정도로 지금의 우리 처지를 잘 나타냈기 때문이리라.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아주 행복할거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왜냐?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게된다. (안그런 아주 좋은 예도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초반에 하고 싶은 것(음악)을 하고 살던 친구가 그냥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아주 불행할거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그 덕분에 가정을 꾸리고, 번듯한 집도 마련하고, 아이들도 건사할 수 있으니까. 이 영화의 세 중년처럼.

하지만,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실직, 배신..)에 놓이게되고, 다시 그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서 "즐거운 인생"을 찾는다.

하지만, 과연 영화의 마지막, 그 성공적인 공연 뒤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이야기는 그 성공적인 공연 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했던 지난 5년. 남은 것은...

나는 약 40여편의 대표적인 인도 영화를 손수 번역해서, 매주 2-3회씩의 상영회를 여는, "인도 영화 동호회 www.indiamovie.kr "를 지난 5년간 운영해왔다. 처음에는 취미였고, 4년전부터는 직업이 되어버렸다. 동호회가 직업이라구? 아, 정말 행복했겠네... 라고 하지만.. 문제는 오직 하나. 돈이었다.

난 춤추며 노래하고, 때로는 심각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몽환적인 환타지를 이야기하는 인도 영화가 너무 좋았다. 이런 영화를 혼자가 아닌, 이런 영화에 푹 빠진 사람들과 같이 즐기는 것이 좋았다. 박수치고 노래를 따라부르고, 웃고 떠들고 눈물을 훔치며, 한 편의 영화를 보고난 후의 카타르시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잘 하지도 못하는 영화번역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고, 결국엔 수많은 작품들을 번역하고, 상영하면서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려고 했다.

영화속의 활화산 밴드를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때, 주변이나 가족들의 냉소적인 반응.. 그것은 내가 인도 영화를 가지고 사무실을 연다고 했을때의 반응과도 같았다. 다들 미쳤다고 했고, 자신들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 영화를 멸시하면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건냈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직접 사무실을 열었고, 주중에는 상영준비와 다음 카페를 활성화하는데 힘썼고, 주말은 언제나 인도 영화와 함께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세편 이상은 늘 상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같은 영화를 수십번봐도 질리지 않는 것이 인도영화이기에, 순환적으로 편성을 했다.


인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무실

▲ 볼품 없었지만, 소중했었던 나의 인도 영화 상영관
바닥에 앉아서 마음껏 소리치며 봐도, 아무도 뭐라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사라지고 없다



날이 갈수록 카페 회원은 늘었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아니, 줄었다가 늘었다가 그랬다. 사무실 운영비용과 내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상영회에 오는 사람에게 돈을 받았다. 돈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인도 영화로 장사한다'며 비난하는 회원들도 있었지만, 그럼 사무실 운영비용과 나의 생활비는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회비로 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초라한 사무실이었지만, 매달 임대료를 내는 것도 빠듯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았을까? 살수가 없다. 그동안 저축한 돈은 바닥이 났고, 그나마 있던 마이너스 통장의 한계에서 한달 한달을 아슬아슬 살았다.

즐거운 인생이라고? 그래, 인생은 즐거웠다. 정말 주중에는 고달프고, 돈이 없어서 친구들 만나서 술도 맘대로 못먹는 인생이었지만, 주말에는 나와 함께 소리지르고, 인도 영화에 푹 빠진 사람들과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좋았다.

수십번을 보고, 또 본 영화이지만, 보면 볼수록 난 행복해졌다. 그리고, 그런 행복함을 느낀 사람들이 나에게 고마움을 전해올때, 또 행복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언제나 '돈'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사무실을 정리하지 않고, 주중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영화 상영을 한 것이다. 사람이 휴일이란게 없어지면, 상당히 고달파진다. 몸은 조금씩 축이나고, 점점 하는일에 짜증이난다.

직장에서 번 돈으로 사무실의 적자를 메꾸고, 남은 돈으로는 그동안 진 빚을 갚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난 생각했다.


"언젠가는 터질거야!"

그렇다. 즐거운 인생의 주인공들은 20여년전 자신들의 밴드가 "언젠가는 활화선처럼 활활 타오르며 터질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터지지 않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시 그들은 '터질거야'를 외치면서 밴드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다음은 무엇이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인도 영화에 대한 일을, 빵빵한 자금을 가진 대기업이 손을 대서 나를, 우리 모임을 즐겁게 해줄 것이라는 꿈을 꾸면서 버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나를, 우리 모임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 하면서 '공짜'로 써먹을 궁리만 해대는 사람들과 계속 맞닥뜨려야 했다.

그리고, 나는 8월에 실직을 했다. 계약기간이 끝난 것에도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인가 이제는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4년 이상 인도 영화 사무실을 이끈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같은 일이었다.
거의 끊임없이 매주 상영회를 여는 영화모임이라니... 다른 영화모임에서도 많이 와서 보고갔고, 다들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제 '아빠, 오늘도 회사가? 가지마..'를 외치는 아이에게 아빠는 휴일이란게 없다고 말해주며 떼어놓고 오는 것에도 지쳤다. 돈을 벌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번 돈을 끊임없이 돈을 집어 넣어야 하는 그 '사무실'에 넣는 것.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사서 모은 정품 DVD들만해도 가격을 합하면 천만원은 거뜬히 넘을 정도에, 수많은 자료들과 인도 영화에 대한 수많은 노하우... 무엇보다, 매주 찌든 생활에 활력소가 될 인도영화 상영회를 기다리는 수많은 회원들... 이것을 한꺼번에 저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제 결정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이제, "즐거운 인생"은 끝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의 임대료를 몇달째 내지 못해서 나가라는 통고를 받았던 나는, 결국, 내 스스로 사무실을 닫기로 했다. 그것이 불과 한 달전의 일이다.

그동안 기증받았던 수많은 가구들과 물품들을 대부분 내 손으로 버리면서, 참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다. 이렇게 닫으려고 시작했었는지, 그 수많은 밤을 새우며 번역을 왜 했으며, 직장을 때려치우면서 이런 일을 해야만 했는지... 지난 잃어버린 세월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내가 여태까지 가장 잘 한 결정은.... 인도 영화 사무실을 연것이었고,
두번째로 잘한 결정은... 그것을 닫기로 한 것이다.....

그래. 이게 맞는 것이다.


나의 즐거웠던 인생, 후회는 말자


[즐거운 인생] 영화에서는 그들의 즐거운 인생을 "밴드"에서 찾았다. 그들이 연주를 하면서 느끼는 쾌감, 황홀감, 행복감은 내가 인도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줄때의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짜릿하면서도 밀려오는 엄청난 충격!

나는 정말 지난 4년, 햇수로 5년이 넘는 세월동안 즐거웠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인도 영화 한 편이면, 모든 근심걱정이 마약처럼 사라졌으니. 아! 나의 즐거웠던 인생아!

후회는 없다. 아니. 후회는 말자. 그게 정답이다.




즐거웠던, 즐거운, 즐거울 인생!

나는, 인도 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했던 지난 5년간, 극장에 제대로 가질 못했다. 도저히 영화를 볼 엄두가 나지도 않았거니와, 일주일에 서너편의 새로운 인도영화를 리뷰해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영화를 보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남들처럼, 남/들/처/럼 영화를 보게 되었다. 즐겁게, 팝콘 하나 사들고 들어가서 짧디 짧은 영화를.. (인도 영화는 보통 한 편이 3시간을 넘는다). 아, 이제 즐거울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무엇인가를 이루기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과 싸우고 있으니까. 내게 즐거운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즐거웠던 인생"을 즐거웠다고 말하고, 미래의 "즐거울 인생"을 현재형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쓰는 것. 바로 그것이 '즐거운 인생'이 아닐까.

한 달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인도 영화 DVD를 다시 꺼내들어야겠다. 이제는 사무실 걱정 안해도 되니까, 조금 느긋하게 즐겨봐야겠다.

나의 즐거운 인생을 위해!


인도 영화 즐김이
한글로. 2007.10.6.

인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 :  www.indiamovi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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