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차례상, 정성이 중요하다!
명절증후군을 없애자




명절 증후군.. 지긋지긋?

나는 집에서 만든 송편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우리집은 늘 송편을 사서 먹었고, 이미 내 아내가 며느리로 들어와서도 늘 송편은 사서 먹는다. 제사 음식도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초기에는 남들 하는것처럼 했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제사 그 자체에 대한 정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어머니께서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제삿상에 오르는 음식을 즐겨 먹지 못했다. 생소한 고기들, 평소와 다르게 요리한 음식들... 그걸 설이나 명절, 제삿날이 지나고서 한참이나 먹어야 하는 것은, 즐거움이라기 보다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는 이런 괴로움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차례, 제사 왜 지내나?

나는 종교를 떠나서, 차례나 제사는 이미 우리나라의 오래된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명절을 핑계로 평소에 만나지도 않던 가족들이 의무감을 가지고 모이게 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끈을 더 강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그동안 별로 생각지도 않았던 고인에 대한 생각을 제사나 차례를 지내면서 자연스레 하게 된다.  가족을 모이게하고, 가족을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차례나 제사의 본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단할 것이 없는 집안이라, 오랜 전통으로 이어온 제사 방식이나 이런 것이 없다. 우리 시골에서는 서울에서 놓는 방식과 완전히 좌우가 바뀌어서 음식을 배열한다. 그걸 서울식으로 바꾸어 놓으면 '틀렸다'고 무척이나 혼을 내신다. 뭐, 그런거다.

솔직히 차례 음식을 놓는 순서나 종류가 조금 다르다고 해서, 차례상에 피자나 바나나가 올라간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문제는 '그 정신'이 아닐까?

아마 지금 우리가 차례상에 놓는 음식들은 옛날에는 참 진귀하고 먹기 힘든 음식이었을것이다. 그래서 명절이나 제삿날에 딱 한 번이라도 "소원성취"할 정도의 음식을 먹는 것. 결국, 먼저 돌아가신 조상이 후손들을 배불리 먹게 할 구실을 마련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로 인해서 가족들이 끈끈히 유지되니, 이는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의 입맛도 달라졌고, 음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면, 제삿상에 오르는 음식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에는 여자들의 부엌노동이 아주 기본적이며 본분처럼 여겨졌지만, 이제 시대가 변해서 남녀가 동등하게 가사 노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크다. 그렇다면, 명절의 분위기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왜 쌍심지를 들고, '정성이 부족하다느니 어쩌고...' 그러는걸까?

'허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장만하는 며느리의 고통이 정성인가? 아니면, 술먹고 즐기면서 '여보~ 안주나 더!'를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정성인가? 정성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정말 정성을 이야기하려면, 음식을 장만하는 손이 즐거워야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도 즐거워야 하고, 음식을 먹는 사람도 즐거워야 한다.

우리네 어머니의 명절에 대한 두려움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정성"은 본질을 잃었다. 단지 그곳에는 "형식"만이 남았을 뿐이다.

며칠동안 음식 장만하느라 고생한 사람에게 '음식의 좌우가 바뀌었다고' 호통치는 사람에게는 이미 '정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형식에 대한 정성'만 남았을 뿐이다. 또한, 그렇게 힘들게 음식 장만한 사람을 실제 제사나 차례 지낼때 쏙 빼놓고 남자들끼리만 지내는 모습에서는 절대로 정성을 찾기 힘들다.


진짜 '정성'이 무엇인가?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종교를 가지신 분들은 그래도 명절에 모여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기념한다고 알고 있다. 이 또한 우리의 명절이나 제사의 '정성'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기념의 방식이 아니다. 그 정신이다.

우리집은 어머니의 제안으로 손이 많이가는 음식들 (수많은 전들..산적들..)은 차례상에서 사라졌다. 잘 먹지 않는 이상한 고기들도 다 사라지고, 우리가 반찬으로 먹는 음식들로 대체되었다. 고기도 흔히 먹는 불고기를 하고, 우리가 먹고 싶어하고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그것도 추석 하루에 다 먹을 수 있는 분량만 하기로 했다.

물론, 송편이나 이런 것은 우리집의 전통(?)에 따라 가장 맛있는 떡집에서 사왔다. 난 한 번도 송편을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정성이 부족하거나 그렇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것도 즐거움이겠지만, 우린 즐겁게 찜질방에서 온가족이 땀빼면서 놀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겼다.

음식 장만은 반나절 정도만 간단히 하고, 남은 시간엔 그냥 즐겁게 이야기하고, 텔레비전을 같이 보았다.

물론, 나도 우리 아이와 함께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아직 다섯살인 이 녀석은 기어코 밀가루를 엎고, 고기를 온동네 뿌려댔지만, 마지막까지 같이 했고, 결국 아침에는 음식을 직접 날라서 증조할아버지의 차례상을 다 차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진정한 정성은 바로 이런 것


차례를 지낼때는 온가족이 모여서 다 같이 절을 한다. 여자라고 빼거나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을 장만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어머니와 며느리가 빠지면, 그것은 정성이 없는 것이다.

차려놓은 상은 볼품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 우리가 보던 음식들이 대부분이었으니.. 하지만, 누가 우리 가족이 지낸 차례가 '정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린 웃으면서 추석을 보냈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약간의 피곤함은 있었지만, 명절 증후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와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고를 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수고도 조금씩 분담할 생각이다.)



발상의 전환이 행복을 부른다

추석날 블로거뉴스에 오른 [명절증후군? 반찬가게 이용으로 떨쳤다!]라는 글과 그 댓글을 보면서, 왜 명절증후군이 여전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음식? 그거 준비하는게 뭐가 힘들어?"
"음식을 왜 남겨? 딱 알맞은 만큼만 만들면 되잖아!"
"요즘 것들은 정성이 뭔지 몰라"

하지만, 음식 준비를 직접 해보고, 그러고도 고되지만 1년에 두어번이니 참을만 하며,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차례상은 내어놓을 수 없다는 우리네 어머니의 댓글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맨날 받아만 먹으면서, "여보~! 술!" 이런 소리나 지르며 "그깟 부엌일이 뭐가 힘들어!"라고 소리치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반영된 댓글들이란... 아... 나는 그냥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 ^^ 그게 쉬운일이면 수십년간 살림해온 분들이 그걸 맨날 못맞추시겠나? 아마 그것보다 주식 투자해서 1000배 남겨먹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발상의 전환은 어디서 시작될까?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아내, 우리의 며느리가 즐거운 명절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한 바쁜 며느리가 미움 받지 않고, 쓸데없이 동서간의 불화를 불러 일으키는 뻐근한 그런 원치 않는 잔치상 보다는, 소박하고 비록 시장에서 산 음식이지만, 일일이 맛을 보고 정성스레 고른, 그런 차례상이 더 의미있는 것이다라는 발상의 전환!

이 발상의 전환이, 우리의 행복을 부른다!

올해도 그 어려운 명절일을 모두 치룬 우리의 어머니, 아내, 며느리들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아마 내년에는 조금 더 수월한 명절을 보내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모두들 애쓰셨습니다!


바꾸는 작은 외침
한글로.
2007.9.26. 한가위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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